지금으로부터 13년전쯤(?)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군에 복무하고 있었고 이병에서 일병 막 올라가기 전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집사정도 별로 안좋고 군대에서 적응도 별로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집에서 진짜 심각한 소식을 듣고 저는 그냥 자살을 결심 했습니다. 군대 생활도 익숙해지지 못하고 친한 동기도 없었고 군대에서 왕따 비슷한 걸 당했습니다. 사방이 막혔었죠...
숨이 턱턱 막히고 그래서 그냥 죽는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근무표를 보니 마침 다음날에 새벽근무가 잡혀있더군요 12:00 ~ 02:00 근무였습니다.
"그래 근무 다녀와서 끝내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새벽이라면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 있겠지" 싶었던 것 같습니다. 목을 멜려고 생각했는데 막상 죽을려고 준비를 하니 마음이 아주 홀가분 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지만 그 때는 아무 것도 안보였습니다. 어쨌든 그때 케이블 공사 감독이라는 작업으로 거의 매일 부대 근처에 일산 SBS 방송국 앞쪽 시내에 작업을 나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기억으로는 상가들이 밀집된 곳 중간에 새로 공사한 잔디밭 놀이터(?)같은 곳에서 지뢰탐지기를 들고 군 통신 맨홀을 찾고 있었습니다.(전 통신병이었습니다) 맨홀 위에 놀이터가 만들어져 지도를 봐도 찾을 수가 없으니 지뢰탐지기로 그 큰 놀이터 바닥에서 어디간 묻혀 있을 맨홀을 찾아야 했습니다.
땡볕에 그 무거운 지뢰탐지기를 메고 방탄까지 쓰고 찾아야하는 일이었는데 당연히 짬밤 안되는 제가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묵묵히 일을 하는데 같이 나갔던 간부가 다른 곳에 급한 일이 생겨 급히 그쪽 현장으로 가야한다며 저에게 잠시 일을 맡기고 갔습니다.
저는 마침 잘됐다 싶어 앞에 보이는 슈퍼에 시원한 콜라 하나 사 먹으려고 갔는데 지갑을 안들고 나왔더군요... 호주머니에 50원 밖에 없는거 보고 기가차서 헛웃음 밖에 안나왔습니다.
맘을 삐딱하게 먹으니 생각도 삐딱하게 진행돼서 "오늘 안그래도 죽을건데 콜라한잔도 못 마시고 죽겠네" 이딴 생각만 하면서 다시 작업중이었습니다. 근데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서 뒤를 보니 유재석씨가 뒤에서 저를 보고 있더군요
유느님 만세
정말 깜짝 놀랬습니다. 죽는 날 연예인을 보고 죽다니 운이 좋은 건가? 싶기도 하고... 제 기억으로는 일요일은 즐거워였나?? 플라잉 체어타고 뒤로 날아가고 물 맞고 하는 그런 프로그램 하셨던 것 같은데
여튼 유재석씨가 제 뒤에서 신기하게 절 보고 계시길래 어떨결에 인사를 드렸더니 반갑게 인사를 받으시면서 "놀이터에 지뢰탐지기? 그거 지뢰탐지기 맞죠? 그걸로 뭐 찾는거에요??" 하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말씀 드리면 안된다고 했더니 "아~ 그렇겠구나~ 죄송합니다~ㅋㅋ" 하시고는 옆에 매니저(?)같은 분이랑 가던 길 가셨습니다.
연예인을 처음 본거라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일 하고 있는데 몇분인가 지나서 누가 등을 치더군요. 뒤돌아보니 유재석씨가 이온음료 두캔이랑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오셔서는 날 더운데 드시고 하라며 손에 쥐어주고 가셨습니다.
가면서 장난스럽게 "충성! 수고하세요~" 하고 가시는데 어안이 벙벙 했습니다. 그늘에 앉아 음료를 마시는데 진짜 왠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왔습니다. 엉엉울면서 음료두캔 비우고 수박맛바 까지 다 먹고는 한참을 앉아서 울다 지쳐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겠는데 그날 저녁 근무를 끝내고 모처럼 단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저 자신도 놀랄만큼 많이 바뀌었습니다. 전역 때까지 후임, 선임, 동기들과 잘어울리며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 순간에 제자신이 바뀐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인생의 한번 있었던 유일한 터닝포인트를 꼽으라면 그 더운날 유재석씨에게 받은 배려와 음료두캔 수박맛바가 떠오릅니다.
사람이 그리워 그랬던지 정이 그리워 그랬던지 둘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안면도 없는 사람에게 그렇게 맑은 웃음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정과 호의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유재석씨였다는게 지금도 참 기분이 좋습니다.
언젠가부터 유느님이란 별명이 생겼는데 정말 마음에 드는 별명입니다. 저에게는 진짜 유느님이거든요. 다시 한번 꼭 만나봤으면 좋겠는데 그럴 기회가 없어 안타깝네요.
지어낸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인증할 방법도 없지만...
맘에 품고 있던 이야기 하니까 기분이 좋네요!!
출처 : http://mypi.ruliweb.daum.net/mypi.htm?id=hhman2&num=9731